경찰서나 가로등보다 못한 교회?

해방 직후 한국 땅이 어수선할 때 많은 사람들이 치안을 위해 경찰서를 많이 세우자고 했습니다. 그때 김구선생님은 오히려 교회를 세우자며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경찰서 열 개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게 나을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이며, 피뢰침의 발명가이기도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펜실베니아의 한 도시에서 교회를 세우자는 안건이 나왔을 때 이렇게 반대했다고 합나다. “교회 보다는 가로등을 더 많이 세우는 것이 도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해 묻는다면 이들은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요? 현대 교회의 가치와 역할에 따라 사람들의 대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해방 직후의 한국 교회는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정직했고, 교육과 문화를 주도하고 시대를 앞서 갔으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랬기에 한국 땅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세워진 곳마다 생명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솔직히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세상의 부담이 되고 경우에 따라선 세상보다 더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해서, 가로등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가 갖고 있던 본래의 것들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진실함과 성결함을 잃어 버렸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구색은 갖추고 있지만 실천은 없습니다. 천국 백성이면서도 세속적 가치를 더 추구하다보니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복음의 상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겐 주지 않았지만 교회에 주신 독특한 축복, 그것이 생명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십자가의 복음이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형식상 외치기는 하지만 복음에 모든 것을 걸진 않습니다. 교회의 기초가 복음인데, 교회의 생명력이 복음인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복음인데, 이것을 빼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오늘날 세상이 목말라하는 것은 몇가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닙니다. 생명을 살릴 복음입니다. 이것을 위해 FAITH 제 17기가 시작됩니다. 이것을 계기로 저희 교회가 다시 본질로 돌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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